한 대상의 어떤 성질이 다른 대상으로 이어지는지, 짧은 문장들로 살펴본다.
메타포(metaphor)는 한 대상을 다른 대상을 통해 이해하거나 표현하는 은유다. “책은 창이다”라고 하면 책을 유리와 창틀로 만든 물건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창을 통해 바깥을 보듯, 책을 통해 자신이 있는 자리 밖의 세계를 접한다는 관계를 드러낸다. 창이라는 말이 책에서 무엇을 보게 하는지가 이 표현의 중심이다.
짧은 예문에서 두 대상의 연결을 살펴보면 뜻풀이보다 구체적인 모습이 보인다. 아래 예들은 그 연결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문장이다.
은유와 직유, 두 대상을 잇는 방식
“책은 창처럼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준다”에는 책과 창을 비교한다는 표시가 드러난다. “책은 창이다”에서는 책을 곧바로 창으로 놓고 말한다. 앞 문장은 직유, 뒤 문장은 은유의 예다. 두 문장은 책과 창을 연결하면서도 그 관계를 드러내는 방식이 다르다. 미국 시인 아카데미의 해설도 은유와 직유를 이러한 비교 방식에서 구별한다.
그러나 은유를 언제나 ‘A는 B다’라는 문장 꼴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생각이 엉켰다”에는 생각을 무엇이라고 부르는 명사 대신, 실이나 줄이 얽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동사가 있다. 여러 생각이 서로 걸려 어느 것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엉켰다’에 담긴다. 생각이 실제 실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그 문장에 없다.
이때 ‘생각’이라는 대상과 ‘엉키다’라는 움직임을 함께 읽어야 한다. 단어 하나만 떼어 놓으면 그 말이 무엇에 쓰였는지 알기 어렵다. “실이 엉켰다”에서는 실제 줄의 상태를 말할 수 있고, “생각이 엉켰다”에서는 그 움직임으로 생각의 상태를 표현한다. 은유의 관계는 문장 안에서 만나게 된 말들 사이에 생긴다.

‘처럼’이라는 말의 유무도 표현을 살피는 단서이지 모든 문장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규칙은 아니다. 무엇과 무엇을 어떤 관계로 비교하는지까지 보아야 한다. 문장 꼴을 알아본 다음에는 그 말이 놓인 상황을 읽을 차례다.
‘벽이 무너졌다’를 두 문맥에서 읽기
문맥의 차이를 보기 위해 만든 두 예를 나란히 놓아 보자.
철거 장비가 오래된 건물의 외벽을 밀었다. 벽이 무너졌다.
여기서는 건물의 벽이 실제로 허물어진다. 앞 문장의 ‘철거 장비’와 ‘외벽’이 뒤의 벽을 구체적인 구조물로 읽게 한다. ‘무너졌다’도 그 구조물의 변화를 가리킨다.

서로 피하던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오해를 풀었다. 벽이 무너졌다.
두 번째 예에서 달라진 것은 건물의 상태가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다. 서로를 피하던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했고, 그 사이에 있던 오해를 풀었다. 이 문맥에서 벽은 소통을 막던 거리와 단절을 떠올리게 한다. ‘무너졌다’는 그 막힘이 사라지는 변화를 표현한다.
건물의 높이나 벽의 재료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은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짧은 철거 소식도 그런 정보를 생략할 수 있다. 두 번째 읽기를 뒷받침하는 것은 앞에서 실제로 제시한 대상과 행동, 곧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오해를 풀었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같은 ‘벽이 무너졌다’를 읽고도 무엇이 달라졌는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구조물이 허물어졌는가, 관계에서 막혀 있던 소통이 열렸는가. 주변 문장이 그 물음에 답하면서 표현의 뜻을 구체화한다. 은유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보다 그 이름을 붙일 근거를 문장에서 찾는 일이 한 걸음 더 나아간 읽기다.
빌려오는 성질과 남겨 두는 성질
두 사람 사이를 벽으로 읽을 때 벽의 모든 특징이 관계로 옮겨오지는 않는다. 벽이 지닌 ‘가로막음’은 소통의 단절과 이어지지만, 회색이라는 색이나 돌의 무게까지 두 사람의 특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문맥이 어떤 성질을 드러내는지 골라 읽게 된다.
“그는 팀의 기둥이다”라는 설명용 예에서도 같은 구별을 할 수 있다. 기둥이 구조를 받쳐 주듯, 그 사람이 팀이 유지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을 읽는다. 몸이 돌로 되어 있다거나 키가 커야 한다는 의미는 따라오지 않는다. 겉모습보다 무엇을 떠받치는지에 눈길을 주면 연결되는 역할이 보인다.

그렇다고 모든 은유를 이미 닮아 있는 물리적 특징 하나의 복사로 설명할 수는 없다. 사람이 기둥과 실제로 닮지 않아도, 버팀이라는 역할을 통해 그 사람의 기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어떤 연결은 익숙한 연상에 기대고, 어떤 연결은 문장이 마련한 상황에서 두드러진다. 스탠퍼드 철학백과의 은유 해설이 다루는 명시적·암시적 표현과 해석의 문제도 은유를 단순한 문장 공식으로 좁히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 준다.
‘기둥’이라는 낱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뜻을 풀어도 원래 표현의 인상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설명은 역할을 알려 주지만,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모습까지 같은 힘으로 보여 주지는 않는다. 뜻을 설명하는 일과 그 표현이 대상을 보게 하는 방식을 읽는 일은 함께 갈 수 있다.
해석을 뒷받침하는 문맥의 단서
‘팀의 기둥’이 어떤 역할을 강조하는지도 주변 말에 따라 달라진다. 그 앞에 “회의가 막힐 때마다 논점을 정리하고, 흩어진 의견을 이어 주었다”라는 말이 있다고 해 보자. 여기서는 팀이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기여가 눈에 들어온다. 기둥의 버팀을 팀의 일과 연결할 구체적인 행동이 제시된 셈이다.
반대로 “모든 일이 그에게 몰렸다. 그가 쉬면 팀도 멈췄다”라는 말이 붙으면, 같은 버팀에서 다른 면이 드러난다. 한 사람의 중요함과 함께 그 사람에게 지나치게 기대는 구조의 부담도 읽을 수 있다. 앞의 칭찬을 무조건 뒤집는 것이 아니라, 주변 말이 보여 주는 역할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이 두 예만으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삶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단정하거나, 왜 모든 일을 떠맡게 됐는지 배경을 만들어 넣으면 문장 밖으로 나간다. 해석을 뒷받침하는 말과 아직 알 수 없는 부분을 구별해야 한다. 여러 읽기가 가능하다는 것과 아무 읽기나 같은 근거를 갖는다는 것은 다르다.
긴 작품에서는 한 사물이 반복되며 다른 의미를 불러오는 상징으로 작용하거나, 여러 장면의 관계가 더 큰 뜻을 이루기도 한다. 여기서 살핀 은유의 연결만으로 작품 전체를 분류할 수는 없다. 우선 지금 읽는 문장에서 어떤 대상이 어떤 말로 보이고 있는지, 그 연결을 앞뒤의 무엇이 받쳐 주는지부터 확인하면 된다.
처음의 “책은 창이다”로 돌아가면, 이제 창이라는 이름보다 그 창을 통해 무엇이 보이는지가 궁금해진다. 책이 보여 주는 것이 낯선 장소인지, 다른 사람의 삶인지, 익숙한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인지는 이어지는 문장이 밝혀 줄 것이다. 책과 창을 잇는 짧은 말에서 시작한 읽기가, 그 책이 열어 보이는 세계로 이어진다.
함께 읽기
참고자료
- SIL Global, Metaphor — 한 개념을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고 표현한다는 설명.
- Academy of American Poets, Metaphor — 은유의 기본 개념과 직유와의 구별.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Metaphor — 명시적·암시적 은유와 표현·해석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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